남해안 최고의 절경을 이루는 섬 거문도 백도.. 다도해의 진주라 불릴 만큼 경치가 아름답고 수산 자원이 풍부한 섬입니다.
특히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하얀등대, 그 뒤로 펼쳐진 한폭의 수채화 같은 산, 그리고 해변의 기암괴석들이 어울러져
지중해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풍경은 발걸음도 떼지 못한 채 감탄사만 연발 시키게 됩니다.
거문도는 고도, 동도, 서도의 3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예전에는 삼도라고도 불리웠다.
일찍부터 문장과 학문이 탁월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 유명하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거문도 서도의 수월산 아래 바다 속에 길이 30m 가량의 남근형 바위가 있어서 대유학자가 태어났다고 하며, 이 바위를 "문필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이 섬에 들어와 김유라는 대학자와 필담을 나누다가 그의 문장력에 탄복하여 거문도라 이름지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거문도사건 (巨文島事件)
- 1885년 영국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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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고종 22) 영국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사건. 거문도는 전라남도 여수와 제주도 사이에 위치한 섬으로, 한·일간의 해상통로였으며 러시아 동양함대의 길목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시 청나라와 일본, 구미열강은 동북아시아의 요충지인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러시아는 1884년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조선에 대한 진출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아프가니스탄문제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긴장관계에 있던 영국은 1885년 4월 러시아의 점령에 대한 예방조처라는 이유를 내세워 동양함대를 파견,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그 뒤 영국은 거문도에 영국기를 게양하고 요새화 작업에 들어가는 한편 거문도주둔군의 수를 증가하고 3월 3일 청나라와 일본에 거문도점령 사실을 통고하였다. 한편 조선 정부는 4월 6일에야 영국측의 공식통고를 받았으며, 이에 강력한 항의를 전달하였으나, 사전 해결에 주체적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비공식적으로 각국 공사관에 협조를 요청하였다. 점령초 청나라·일본·미국 등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영국의 행위에 동조 또는 방관하는 입장이었으나 그 뒤 사건이 국제문제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청나라의 이홍장(李鴻章)은 조선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겸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다. 또한 8월 2일 영국과 러시아간에 아프가니스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영국은 거문도점령의 명분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이홍장은 주청러시아공사 라디젠스키와 회담하여 영국이 거문도에서 철수한다면 러시아는 조선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영국측에 전달함으로써 1887년 2월 5일 영국 군대는 거문도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는 조선 침투에 제동이 걸린 반면 중개역할을 맡았던 청나라는 조선의 내정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거문도사건은 영국과 러시아 상호간의 정치적 야욕에서 발단된 사건으로 그 시작이나 처리과정이 주권국인 조선 정부를 배제하고 열강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조선의 국제적 지위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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