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치 : 경북 경주시 건천읍 산내면
▶ 교 통 : 자가용 (가족산행)
▶ 산행코스: 오덕서원~(40분)~신선사~(45분)~단석산 정상
▶ 등산시간 : 3시간 10분(간식및 휴식시간 포함)
▶전번주 나혼자만 거문도 백도 다녀와 미안한 마음에 토요일 저녁 특근 근무를 하고
아침 퇴근후 피곤함속에 가족들과 함께 산행한날,,,
단석산의 전설
삼국통일의 공신인 김유신(金庾信)은 595년(진평왕 17년) 충북 진천에서 만노군(萬弩郡:진천)의
태수이던 서현(敍玄)장군의 첫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로왕의 13대손인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17세에 고구려,백제의 잦은 침략에 삼국통일
의 큰 뜻을 품고 서라벌 서쪽 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천지신명에게 고구려,백제,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만에 한 노인이 나타나 김유신의 인내와 정성을
가상히 여겨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 (神劍)을 주었다고 삼국사지,동국여지승람,동경잡기에 소개
되어있다.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고구려, 백제와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고하여 이름이 단석산
(斷石山)이 되었다.
이 산은 건천읍 송선리 산89번지 우중골에 있으며 산 7 - 8부 능선 4개의 바위가 둘러싸인 천연
굴이 있는데 옛날에는 상인암 (上人巖:일명 탱바위)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화랑들은 이 바위굴속에 불상을 새기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석굴사원을 만들었다. 이 절을 신선
사(神仙寺) 또는 단석사(斷石寺)라고 부른다. 내부의 마애불상은 국보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김유신의 유적지는 충북 진천에 담안밭 탄생지, 태를 묻은 태령산,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 연보정,
말을 훈련시켰다는 치마대와 투구모양의 투구바위가 있으며 길상사는 흥덕왕 10년(835)에 흥무
대왕으로 추봉 된 후 사당으로 건축되어 장군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경주에는 김유신장군묘와 금산재비각이 있다.
사귀던 천관녀의 집터는 천관사로 남아있다.
천관(天官)이란 여인의 집에 자주 드나들자 어머니 만명(萬明)부인은 왕과 부모에게 기쁨을 주
기를 기대했는데 술과 여자를 즐기느냐며 울며 타이르자 다시는 그여자 집에 가지 않기를 맹세
했다.
그러던 어느날 말은 유신을 태우고 눈에 익은 길을 따라 천관녀의 집에 다다르자 유신은 말의
목을 베어버리고 그 집을 떠났다.
천관은 원사 한곡을 지어 속세를 떠났다고 한다. 고려의 문인 이규보(李奎報)는 이에 아래와 같
이 읊었다.
절 이름 천관사 옛부터 연있더니
홀연 지낸 일 듣고 한 번 슬퍼라.
삐딱이 취한 공자 꽃아래서 놀고
애원하는 미인 말앞에서 우네.
적토마 다정해서 오히려 길을 알고
상노는 무슨 죄로 채찍을 받았더냐.
다만 남은 것은 한 곡조 좋은 가사
휘영청 달빛 아래 만고에 전해지네.
김유신은 엄격한 성품으로 신라 국민정신과 화랑정신으로 승화시켰는바, 이 엄격함은 가훈을
어긴 아들 원술과 부자의 연을 끊어버리기까지 한데에서도 잘 나타나고 당나라의 영토적 집착
을 단호히 물리친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 고구려를 멸하여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은 태대각간의 직위를 받고
673년 78세로 세상을 떴으며 사후162년후 인신으로서 대왕(흥무)에까지 오른 전무후무한 기
록을 남겼다.
누이 문희(文姬)는 김춘추에게 출가하여 무열왕비가 되어 문무대왕을 낳았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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