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중국투어 삼일째,,,봉황산 오르다.

삼무강천 2009. 8. 10. 09:24

◈  봉황산 

옛 고구려의 봉황산성이 있었던곳으로

단동시에서 57km떨어져 있으며 총면적 216㎢, 최고봉인 찬운봉의 높이는 해발 836m이다.

요녕성 4대명산 중의 하나이며, 태평시절인 순임금때 이 산에서 봉황이 나타난 이래로 ‘명군이 나타날 때마다

봉황이 나타난다’하며 봉황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산중턱 관음동에 신비한 ‘알바위’ 라는 거대한 동굴이 있는데 그 바위 밑을 서른세번 들락거리면 아들 낳는

주력을 얻는다고한다. 


 

 

 

 

 

 

 

 

 

 

 

 

 

 

 

 

 

 

 

 

 

 

 

 

 

 

 

 

 

 

 

 

 

 

 

 

 

 

 

 

 

 

 

 

 동북공정, 40년전에 시작됐다

=중국 정부는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고구려의 자취를 없애기 시작했다고 한다. 봉성시 출신의 조선족들에 따르면

1980년대말까지만 해도 단둥 인근의 봉황성 옆에는 '고려문(高麗門)'의 유적이 있었다고 한다.

봉황산은 과거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 3년 동안 전쟁이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은 조선 후기 청나라와 무역을 했던 '책문(柵門)'으로 알려져 있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 문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버려진 채 흩어져 있었던 유적들을 모두 캐 버렸고 문마저 없앴다고 한다.

그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현지에 진출한 한 기업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이민족 포용정책을 펴면서도 동시에 강력하게 견제하는 정책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며 "특히 동북 3성에는 대규모 유전지역이 자리잡고 있어 결코 놓칠 수 없는 전략적 지역으로 격상시켜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 지역의 유전 매장량은 세계 10대 규모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즉각 개발하지 않았고 이제 비로소 본격적인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설명이다.

다롄~선양~단둥~허룽~무당장을 잇는 도로를 건설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같은 맥락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1960년대 산둥성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을 랴오닝성으로 대규모 이동시켰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비록 소수민족이지만 가장 강력한 결집력을 갖고 있는 조선족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후진타오 정권은 동북대개발을 통해 국가통합 및 안정유지 작업의 백미를 이루고자 하고 있다.

이전 정권이 서북대개발, 서남대개발을 통해 이들 지역을 보다 확실하게 편입시켰고, 남아 있는 핵심전략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동북공정은 단순히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역사 왜곡작업'에 머물지 않는다.

중국 변방 지역의 통합 및 유지, 결속력 확인, 독립 움직임 말살, 경제적 부가가치의 극대화 등을 노린 다목적 포석인 것이다.

중국 중앙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다

 

봉황산성은 중국의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시기 고구려에서 축성한 성곽으로 둘레가 16㎞에 달해 중국에서 발견된 고구려 산성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지난 96년 중국 정부에 의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