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여행
2009 문화일보가 걸었던 ‘길 중의 길’ 4選
삼무강천
2009. 12. 31. 04:16
발 닿는 곳에 길이 있었습니다
2009 문화일보가 걸었던 ‘길 중의 길’ 4選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올 한 해, 여행의 화두는 단연 ‘길’이었습니다. 돌이켜보자면 여행의 트렌드는 2~3년을 주기로 달라져 왔습니다. 아파트를 방불케 하는 고층 콘도미니엄의 편리함이 대세였던 적도 있었고, 동화 속 같은 이국적 펜션여행이 주를 이뤘던 때도 있었습니다. 뒤이어 감자와 고구마를 캐거나 떡을 빚는 체험여행이 붐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이제 ‘길’이 명실상부한 여행의 중심이 됐습니다. 여행자들이 싱그러운 자연 속을, 혹은 두터운 역사 공간을 걷는 일의 행복함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요. 걷는 여행 붐의 출발점은 논란의 여지없이 제주의 ‘올레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늦봄 무렵에 처음 놓인 제주의 올레 길은 올해 단연 최고의 히트상품이었습니다. 이제는 ‘올레’란 말이 곧 걷는 길을 뜻하는 대명사가 됐을 정도니까요. 뒤이어 지리산 자락의 마을을 도는 ‘지리산 둘레길’이 놓였고, 전국 각지에 앞다퉈 걷는 길들이 놓였습니다. 걷는 일이 여행의 대세가 됐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걷는 여행이란 이동의 수단이 차가 아닌 두 발이 됐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지요. 사실 여행을 떠난다는 의미 자체가 ‘길 위에 서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전의 여행이 ‘길 끝의 목적지’에 집중하는 것이었다면, 이즈음의 걷기여행은 목적지보다는 길 자체에 집중한다는 것이 다른 것이지요. 여기다가 걷기여행으로 이른바 ‘저비용 여행’을 가능케 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합니다. 사실 걷기여행이 대세를 이루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의 품질은 비용에 비례했습니다. 고소득층을 겨냥해 분양 목적으로 세운 으리으리한 최고급 콘도미니엄이나 하룻밤 숙박료가 수십만원을 넘는 특급호텔이나 호화판 펜션에서 묵는 것이 좀 더 나은 여행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걷기여행이란 ‘고비용 여행’과는 달리 소박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아무래도 걷는 여행은 고급스럽고 호화로운 특급호텔보다는 소박한 민박집이 더 어울리는 것이지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즈음, 지난 한 해 동안 ‘EZ 여행’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여행지들을 정리하며 그간 소개했던 길 중에서 최고의 길 4곳을 꼽아봤습니다. 지난 한 해 제주에서는 맑은 바다와 가장 가까이 걷는 한담~곽지 간 산책로를 만났고, 경북 영양군 수비면의 대티골에서는 짙은 초록색이 온몸에 묻어날 것 같은 숲길을 걸어봤습니다. 여기다가 초가을 함안에서 마주쳤던 끝없이 이어진 코스모스 제방 길도 꼽아봤습니다. 깊은 가을에 다녀왔던 대승사의 암자인 묘적암으로 오르는 가을 낙엽길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여기에 꼽은 4개의 길은 지리산 둘레길처럼 긴 길도 아니고, 올레길처럼 이름난 길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연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길임을 자부합니다. 풋풋한 풀 냄새와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 발바닥에 폭신하게 느껴지는 촉감까지 모두 느낄 수 있는 곳들입니다. 되도록 계절에 맞추면 더 좋겠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좋겠습니다. 아마도 이 길을 걷게 된다면 목적지에만 눈을 두지 않고 그저 길을 느끼며 걷는 일이, 고즈넉한 길에서 제 숨소리를 제 귀로 듣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글·사진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기사 게재 일자 2009-12-30
싱그러운 혹은 신비로운…‘길 중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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