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여행
◆홍류동 계곡
삼무강천
2012. 8. 8. 17:25
때를 만나지 못함을 슬퍼하며
고운 최치원(崔致遠,857~?)은 신라시대의 학자로서 경주 최씨의 시조이다.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이며, 경주 사량부 출생이다. 6두품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자질을 인정받아 당나라에 유학하였으며, 귀국한 후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등인 아찬에 올랐다. 고려 현종 때 문창후로 봉해졌고, 학문과 문학에서 깊은 업적을 남겨 문인들은 그를 ‘동국문종’이라고 추앙하고 있다. 또한 후일 가야산으로 들어가 신발만 남긴 채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서 후인들에게 ‘유선(儒仙)’으로 불린다.
경상도와 전북 일대에는 지금도 최치원의 행적이 전해진다. 옥구군에 있는 바위에는 최치원이 먹을 갈던 곳과 무릎자국이 남아있다고 하며, 해운대에서는 도술로 바위에 자신의 호를 새겼다고 한다. 유적뿐 아니라 출생설화를 비롯하여 전설도 많이 전해진다.
入 靑 山 更 不 還(일입청산갱불환)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니.
위의 내용이 바로 최치원의 입산시 입니다.
최치원은 가야산 해인사를 끝으로52세 때 종적을 감추었다고 하네요
고운또는 해운 최치원 선생이 벼슬을 버린 후 전국 각지를 유랑하다가 마지막으로 가야산에 입산하여 수도한 곳
부산 해운대를 해운대라는 이름 있게 하신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