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갑 설화가 전해지는곳 "서출지"
사적 제138호.
삼국유사 기이편(紀異扁)에 서출지에 얽힌 사금갑(射琴匣) 설화가 전해지는데.
때는 신라 소지왕 10년(488).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 하였다.
괴이하게 여긴 왕이 신하를 시켜 따라 가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 주었고, 왕에게 그것을 올렸다.
"開見二人死 不見 一人死"
'열어보면 두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는다'
라고 그 겉봉에는 씌어 있었다. 왕은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열어보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자 일관(日官)이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요, 한 사람은 임금을 뜻한다고 하며 왕에게 봉투를 열어볼 것을 청하였다.
왕이 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射琴匣"
'거문고갑[琴匣]을 쏘라'
는 글이 씌어 있었다. 왕이 활로 거문고갑을 쏘니 그 안에서 궁주(宮主)와 승려가 정을 통하다 나왔다.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공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라 하고,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 지내는 풍속이 생겨 났다고 한다.
바로 오곡밥을 먹게 된 유래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못가에 이요당(二樂堂) 이라는 건물을 지어 글을 읽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정면 4칸, 측면 2칸인 팔작집의 ㄱ자형 이요당(二樂堂) 건물은 연못 서북쪽에 소박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요당(二樂堂)은 정자 건물로 풍천 임씨 종부댁의 개인 소유이다.
● 서출지(書出池) 찾아가는 길
경주시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울산 쪽으로 가다가 사천왕사 터 앞에서 우회전, 화랑교를 넘어 동방역을 지난 후 우회전하면
통일전이다. 서출지는 통일전 왼편에 있다.
또다른 길은 7번 국도를 타고 울산 쪽으로 가다가 동방초등학교를 지나 우회전하여 조금 가면 서출지가 나온다.
통일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