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바라본 졸본성
해모수의 아들 고주몽. 그는 하늘과 물이 절묘한 만남을 이룬 곳에 터를 잡고 졸본성을 쌓았다. 처음엔 성으로 인정 받지 못했던 졸본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과정과 고구려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속셈을 들여다 보았다. |
▲“기원전 2~3세기경 고주몽은 비류수가에 나라를 세우고,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이곳에 세웠다.”
광개토대왕비와 삼국사기에 나온 이야기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 물의 신인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 태어난 동명성왕(고주몽)의 신화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신화는 얼토당토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졸본성이 자리잡고 있는 ‘환인’이라는 지명도 단군신화와 관련이 있고 물태극을 만들며 흐르고 있는 혼강(비류수) 유역에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 위산이 우뚝 솟아 있다.
고구려의 첫 수도인 졸본성이다.
과연 고주몽은 하늘신 해모수의 자식답게 힘찬 기상이 서려 있는 곳에 도읍지를 잡았다.
졸본성을 에워싸며 흐르는 비류수(혼강)는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의 머리결 마냥 감미롭다.
하늘과 물의 절묘한 만남. 고구려역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중국내 고구려 유적지나 백두산에는 늘 중국 현지 가이드가 따라 다닌다.
고구려유적 전문답사를 막기도 하고 태극기 흔드는 것도 방지하고 어쩌면 가이드라기보다는 감시인으로 따라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고구려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동명왕 신화가 어떤 내용인지 전혀 언급이 없다.
뜬금없이 ‘5선녀 이야기’나 일제 때 항일전투에서 희생당한 5명의 여전사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우리가 애타게 듣고 싶은 것은 정작 고구려 이야기인데….
▲성위로 올라갈려면 999계단을 올라야 한다.
[졸본성의 천지. 800미터 돌산에 샘물이 솟아난다. 고구려 사람들은 늘 하늘을 숭상했기에 천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이 샘물이야말로 생명수다. 아무리 성이 견고하더라도 물이 없으면 싸울 수 없고 물의 양에 따라 성을 지키는 병사 수도 달라질 것이다.
그 물을 그냥 아래로 흐르게 만하지 않고 작은 저수지를 만들어 효율적으로 물을 활용했다.
배수구에는 또 다른 저장 공간이 있어 빨래나 기타 허드렛물을 사용했다.
천지 아래 절벽으로 내려가면 도교동굴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슬며시 바라본 비류수의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S자로 굽이도는 수태극과 산태극이 절묘한 산수화를 그려놓았다. 천하의 명당임을 보여주는 지형이다.
2천년동안 닳고 닳은 멧돌을 어루만지면서 고구려인들의 애환을 느껴보고 식량창고터에서 산더미처럼 쌓여진 군량미를 상상해본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주거터의 온돌구조이다. 현재까지도 온돌은 우리 삶의 방식으로 남아 이어지고 있다.
마당의 창고도 고구려 문화의 흔적들이다. 발부리에 채이는 돌의 흔적을 지나면 장대가 나온다. 선돌에는 요령성 제 1경치라고 쓰여있다.
환인댐을 만들어 놓아 인공호수가 되어 한때 높다란 산들이 섬이 되어 장쾌한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동문으로 내려가는 길 역시 만만치 않은 경사다. 바위절벽 사이에 한사람만 간신히 내려갈 수 있는 공간이 놓여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곳은 졸본성의 숨통이었다. 이 바위길이 없었더라면 고구려의 해상교통로인 비류수로 내려가는 길이 무척이나 힘겨웠을 것이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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